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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0일 CGV압구정에서 열린 <좋지아니한가> 정윤철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맞춰 두 번째 만남을 하게 되었다. 지난번과 같은 기자들의 대화가 아닌, 관객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에 다시금 영화 함께 보기를 택했다.

영화 상영에 앞서 정윤철 감독이 남긴 “다른 영화들의 점유율이 높아지는 가운데 어쩌면 다음 주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말과 함께, 그의 영화를 보는 데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보게 된 영화. (실제로는 얘기한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계속 상영중이다.)

◆ <좋지아니한가> 정윤철 감독의 관객과의 대화

Q. 극중 박해일이 만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춤과 노래가, 후반부 싸움에서 나온 ‘춤과 노래’와 상관관계가 있는지?
A.
그 노래와 춤은 ‘마카레나’다. 그 노래를 쓴 이유는 우선 극중에 등장하는 원시시대의 어이없는 단편영화에 어울렸기 때문이고, 후반부에 나오는 가족의 난장판 싸움은 내 인생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원래 싸움이란 게 어이없는 경우에 발생한다고 생각해서 넣었다. 그 부분에 있어 ‘마카레나’를 삽입한 이유는 원시시대나 지금의 현실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그리려 했다.
가족이란 원시시대 최초의 사회 집단이고, 집 역시 원시시대의 가족이 맹수를 피하기 위해서 돌아오는 장소로 보았다. 요즘은 사람들이 가족이나 집을 너무 어렵게 보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이 실은 힘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나는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지키는 것이 바로 가족이라고 봤다. 뿔뿔이 흩어져서 오는 것. 또한 같이 사는 사람이 아마도 진정한 가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서이다.
또 하나의 측면에서 보면, ‘마카레나’는 과거와 현실을 이어주는 의미로 택한 것이다.

Q. 영화가 <심슨가족>을 연상하게 하는데, <좋지아니한가>로 한 이유는 무엇인지?
A.
처음에는 <좋지아니한가>로 했다가, 중간에 <좋지아니한가>에 나오는 영문제목으로 바꾸어도 보았다. 그 때, <심슨가족>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래서 다시 <좋지아니한가>로 바꾸었다. 난 <좋지아니한가>란 제목 앞에 괄호가 있는 게 아닌가 했고,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가령, ‘(함께 사니) 좋지아니한가’, ‘(서로 사랑하니) 좋지아니한가’, ‘(머리가 커도) 좋지아니한가’처럼.
덤덤하며 무뚝뚝하게 살다가 위기에 처한 가정과 그 모습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용선이 있다. 극중 용선이 하는 말은 누구나 생각하는 질문이라고 본다. 이러한 가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구원해주는 건 바로 덤덤함이다. 결국 서로를 덤덤하게 인정해주는 것이 바로 중요하며, 그것이 실은 부족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이 싸우는 행위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며, 서로를 지키기 위한 것이기에 그 결론을 싸움으로 표현했다.
인간이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게 힘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기보다 인정할 수 있는 것이 힘든 것이다.
가족, 친구에 대해 서로 인정하는 것이 좋지 아니한가,
이게 잘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지 않는가.

Q. 후반부 ‘마카레나’가 흘러나오는 부분에서 창수가 아내에게 사실을 고백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부분에서 창수의 회상을 통해 달빛을 받아 변화가 생겼음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어떻게 된 건지?
A.
창수가 달빛의 음기를 받아서 회복되는 것이 의도였고, 그것은 인생에 있어서 작은 시험과 이를 통과한 과정에 대해 인간에게 주는 선물로 보았다. 결국 달이 주는 선물로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아내에게 거짓말을 한 건, 창피함을 택함으로써 아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아주 색다른 방식이었다고 본다.

Q. 기쁜 소식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남자로서의 불구라는 점을 인정하는 건 아닌지?
A.
그렇다고 해서, 그 상황에서 기쁜 소식을 그대로 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는가. 좌우간 이 영화는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다.
다수의 캐릭터들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는 여러 캐릭터가 하나로 연결되지만, 이 영화는 각자의 캐릭터가 병렬적으로 진행된다, 물론 이 영화도 나름대로 큰 에피소드는 있지만, 각각의 캐릭터 위주로 나아가기 때문에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려 한다면 엉키기 마련이다.  


Q.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 치고는 캐스팅이 화려하다. 힘들지 않았나?
A.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누가 주연이고, 조연이라고 생각지 않고 자기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했다. 까메오든, 우정출연이든 스타들이 하겠다고 하는데 말릴 수는 없지 않는가. 영화의 앙상블을 만드는 것은 내 몫이다. 영화를 촬영하면서 영화의 밸런스 맞추기, 앙상블을 걱정했는데 그나마 나름대로 밸런스가 잘 맞아서 다행이었다.
김혜수는 시나리오 보고 결정했었다. 어제는 <타짜> 촬영하고 오늘은 <좋지아니한가> 촬영했다. 그 쪽에선 이대 나온 여자 역할하고, 이 쪽에선 이대 못 나온 여자 역할 하는 걸 보면서 연기력에 정말 놀랐다. 예전에는 ‘김혜수는 비록 예쁘긴 하지만, 내 스타일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영화를 하면서 김혜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 내 생각이 바뀌었다.
박해일은 평소의 모습을 내가 잘 알고 있어서 줄곧 그를 관찰해 왔었다. 특히 실생활에서 보이는 그의 묘한 눈동자를 영화 속으로 끌어내도록 노력했다. 개런티도 적게 받아서 모범적인 사례였다.

Q. 다시 보면서 드는 생각은?
A.
이 영화는 덤덤한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고, 그런 의미에서 여러모로 많이 자제했다. 평소에 스타일 있는 영화도 좋아하고 오래 찍기, 커트, 클로즈업 등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덤덤한 가족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런 페이스에 맞추어 편집 작업을 하려 노력했다. 물론 스타일적인 고민이 있었지만, 처음 생각한 그대로 끌고 나가 시나리오의 느낌을 살리려 했다. 그래서 인물들의 표정을 좀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 조미료를 치거나 하지 않았다. 보고 나서 커트, 클로즈업을 더 쓰고 했다면 배우를 더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인위적으로 다가가기보다는 옆에 서 있는 느낌으로 차분히 다니면서 가족의 일부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Q. 시나리오에는 있는데, 영화에서 삭제된 것은 없는지?
A.
극중 정유미의 캐릭터 촬영 분량이 많이 삭제되어 아쉽다. 원래는 창수가 그녀를 구하게 된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는 창수가 옛날에 사귀었다가 세상을 떠난 여자친구와 많이 닮아서였다. 그 에피소드를 찍던 도중에 천호진과 정유미 두 사람이 등장하는 씬은 도중에 찍다가 말았다. 왠지 찍으니 너무 안 어울렸다. 또 하나의 이유라면, 창수라는 캐릭터가 설명되면 될수록 캐릭터성이 떨어지는 것이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속 창수라는 캐릭터는 영화 <오아시스>에서 끝까지 이야기를 하지 않는 그 때 그 캐릭터 같은 것이다. 자기가 끝까지 말 안 하면서 마음만 있으면 되는 캐릭터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천 씬을 보면 격한 상황에서 순간 폭발하는 것, 비록 가족에 대해 따스한 것은 없지만 한번에 터뜨려 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할리우드의 유명한 제작자의 말에 인용하면, ‘로버트 드 니로에게 시나리오를 맞추는 것이지, 시나리오에 적힌 대로 로버트 드 니로에게 연기를 요구하는 것은 바보 짓이다.’ 라는 말이 있다. 그런 말처럼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맞추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본다.
영화 <히트>에서 보면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가 함께 등장하는데, 메인 플롯, 서브 플롯이 각자에게 존재하고 있다. 서브 플롯에서 알 파치노의 경우는 로맨스가 사는데, 로버트 드 니로는 전혀 안 산다. 그런 것들이 배우에 맞게 맞춰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일화라고 본다.
원래 시나리오 단계에 창수 역은 더 소심했지만, 천호진이란 배우가 맡으면서 덜 소심한 느낌으로 보이도록 그렸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시나리오에 있는 창수란 캐릭터를 중간에 포기하고, 배우에 맞게 시나리오를 바꾼 것이다.

Q. 영화를 촬영하면서 힘든 점이 있었다면?
A.
볼 때는 아주 평범해 보일 지도 모르지만, 실제 영화를 촬영하는 데 있어 앵글 하나 하나에 온 힘을 기울였다. 영화나 드라마를 일정 공식에 맞춰 촬영하면 쉬운데 그렇지 않으면 매우 힘들다. 이 영화는 덤덤하고 일상적인 판타지 영화를 지향했는데, 일상적이고 몽롱하며 떠 있는 느낌을 고민하면서 이를 한 듯 안 한 듯 만드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인지 몰랐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여러 명의 캐릭터를 튀지 않게 하는 점이 제일 힘들었다.
<말아톤>이 한 명의 마라톤이었다면, <좋지아니한가>는 9명의 마라톤이었다. 결국은 페이스메이커가 1명이 아니라 9명이란 점이 다를 뿐이라고 본다. 영화를 찍는 게 중간 중간 퍼즐을 맞추는 것 같아 촬영하기 힘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은 인생에 올인하지 말고 사랑, 일에 올인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줄 것은 인정하면서 덤덤하게 사는 것, <말아톤>에서의 초원 엄마가 했던 행동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천천히 덤덤하게 인생을 봐주는 시선을 그리고 싶었고, 덤덤하게 살며 인생을 올인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글ㆍ사진/ 방콕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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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맨 | 평소에는 어디든지 방콕하지만, 영화를 볼 때만큼은 영화관에서 사는 이. 방콕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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